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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호의 철학산책(20)]철학 무용론에 답함 -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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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호 울산대학교 철학과 객원교수·철학박사

‘철학은 쓸모없다. 오직 과학과 기술만 발전하면 된다’라는 주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혹자는 이 사회에서 철학은 무용하다고 주장하거나 그렇게 믿는다. 일종의 ‘철학 무용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철학은 사회의 발전에 아무런 이바지를 하지 못하며, 애초에 답이 존재하지 않는 물음에 관한 겉만 번지르르한 지적 허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반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사회에 진보를 가져오기에 권장할 만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철학 무용론’은 정당화되기 힘들다. 우선 ‘철학은 쓸모없다’라는 명제는 과학적 명제인가? 즉, 과학적으로 그 옳고 그름이 판별될 수 있는 종류의 명제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밝혀줄 그 어떤 물리법칙도 알지 못한다. 아니 이 명제는 과학이 다룰 수 없다. 즉, 과학이 다룰 수 없는 진리의 영역이 있는 것이다.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시작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우리 문명을 떠받쳐 주는 부분은 물질 이외에 정신의 영역도 포함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가령, 헌법책은 물질이지만, 헌법의 내용 및 헌법 정신은 물질이 아니다. 민주주의 이념도, 도덕 원칙도, 가치와 사상도 물질에 속하지 않는다. 움직이던 자동차를 멈추게 만드는 것은 물질인 신호등 이외에 교통법규라는 정신에 속하는 영역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대한민국에 지금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이념이라는 정신의 영역에 속하는 사상이 필요하다. 과학과 기술이 다루기 힘든 광활한 정신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과학은 대리석의 화학적 특성에 관해서만 알려줄 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왜 위대한 예술작품인지에 관해서는 말해줄 수 없다. 과학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바로 그 정신의 영역을 창조해내고 끊임없이 검토하는 활동이다.

김남호 울산대학교 철학과 객원교수·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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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02, 2020 at 06:4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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